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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용은 사람과 함께 완성하는 살아 있는 예술” – 가새미용실 김인태 대표

“미용은 사람과 함께 완성하는 살아 있는 예술”

‘우러러 김’ 김인태 가새미용실 대표의 47년 미용 인생

편집자 주 | 본지는 미주 한인사회의 문화·패션·비즈니스 분야에서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번에는 미용은 사람과 함께 완성하는 살아 있는 예술이라 말하는 가새미용실 김인태 대표를 만나봅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8가와 웨스턴이 만나는 곳. 한인타운 중심에 머리에 신경을 좀 쓴다는 사람들만 가는 특별한 미용실이 있다. 바로 가새미용실. 이 곳을 대표하는 김인태 헤어 디자이너는 은행원에서 아시아 미용대회 우승자로, 다시 교육자와 봉사자로. 다소 특이한 이력을 쌓아가며 약 47년 동안 미용 외길을 걸어왔다. 본명보다 ‘우러러 김’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할리우드 원로 배우들의 헤어를 담당할 만큼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제는 평생 쌓은 기술을 후배와 이웃에게 나누며 미용의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은행을 떠나 4년 만에 아시아 정상으로

김 대표의 첫 직업은 미용사가 아닌 은행원이었다. 한국주택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1년 반 만에 사표를 내고 서울 명동의 미용실 보조로 들어갔다. 계기는 잡지에서 본 국제 미용대회 수상자의 사진 한 장이었다.

“한 손에는 트로피를, 다른 한 손에는 상패를 들고 있는 남자 미용사의 모습이 정말 멋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본 날 바로 미용학교에 등록했습니다.”

그가 미용을 시작한 1970년대 말은 남성 미용인이 드물던 시절이었다. 안정된 은행을 그만둔 데 대한 가족의 반대도 컸지만, 그는 미용인의 길을 선택했다.

‘우러러 김’이라는 별칭은 아시아대회 우승 후 처음 생긴 것이 아니었다. 은행을 그만두고 명동의 미용실에서 보조 생활을 시작하자 옛 은행 동료들이 “탄탄한 직장을 그만두고 미용을 시작했으니 앞으로 너를 우러러봐야겠다”고 농담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김 대표는 미용을 시작한 지 4년 만인 1986년 아시아 미용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우승했다. 당시 한국의 한 일간지가 그의 우승 소식을 보도하면서 동료들이 붙여준 ‘우러러 김’이라는 별칭을 기사에 함께 소개했다. 이를 계기로 ‘우러러 김’은 미용계에 널리 알려졌고, 본명 김인태보다 더 친숙한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국가대표 선수와 트레이너로 활동했으며, 약 200차례의 대회 심사와 1,000회 이상의 세미나 및 교육 무대에 참여했다고 회상한다. 일본과 프랑스, 미국 등지의 대회와 연수에 참가했고, 서울의 주요 호텔과 대형 행사장에서 작품 발표회도 열었다.

미국에 정착한 뒤에는 할리우드 원로 배우와 영화계 인사들의 헤어를 담당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처음에는 고객의 소개로 인연을 맺었지만, 그의 커트 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다른 영화계 인사들에게도 소개됐다. 지금도 이들의 자택을 방문해 정기적으로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현재 운영하는 가새미용실의 ‘가새’는 가위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유행보다 그 사람의 ‘나다움’

김 대표는 미용을 단순히 머리를 자르고 다듬는 기술로 보지 않는다. 고객의 개성을 발견하고, 디자이너와 고객이 교감하며 완성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도예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을 깨뜨릴 수 있고, 화가나 작가는 다음 날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용사는 손님의 머리를 절반쯤 자른 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돌려보낼 수 없습니다.”

미용은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에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얼굴형과 두상, 모발의 굵기와 숱은 물론 고객의 생활 방식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유명인의 사진을 가져와 같은 스타일을 요청해도 무조건 그대로 따라 하지 않는다. 유행을 복제하기보다 고객에게 어울리는 형태로 다시 해석한다.

“젊든 나이가 들었든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개성이 있습니다. 좋은 헤어스타일은 남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나다움’을 살리는 것입니다.”

시니어에게도 무조건 젊어 보이는 스타일보다는 자연스럽고 손질하기 편한 디자인을 권한다. 남성에게는 짧고 단정하면서 모발의 질감을 살린 스타일을, 여성에게는 모발 끝에 움직임을 더한 샤기 커트나 가벼운 레이어드 스타일을 제안한다.

“머리를 감고 가볍게 턴 뒤 소량의 스타일링 제품만 사용해도 형태가 살아야 합니다. 매일 오랜 시간 드라이하거나 펌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커트가 시니어에게 좋습니다.”

스타일에 앞서 두피와 모발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두피와 모발 상태에 적합한 제품을 사용하고, 샴푸 잔여물이 남지 않도록 충분히 헹구는 기본적인 습관부터 지켜야 한다는 조언이다.

기술을 나누는 교육자이자 봉사자

김 대표가 미용 봉사를 시작한 계기는 198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2층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던 그는 목발을 짚은 단골 고객이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모습을 봤다.

“그 순간 미용실에 직접 오기 어려운 분들을 내가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02년 LA로 이민한 뒤에는 양로병원과 도움이 필요한 현장을 찾아 어르신들의 머리를 손질했다. 나성순복음교회에는 이미용학교를 설립해 미용 기술을 봉사와 선교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지금까지 약 500명이 이 학교를 거쳐 갔으며, 일부는 LA와 다우니,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등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대표로 성장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기술을 배우기 어려운 후배에게는 무료로 개인 지도를 제공하고, 남미 에콰도르에서도 현지 미용인들을 교육해왔다.

“자격증은 미용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일 뿐입니다. 깊이 있는 기술은 오랜 시간 기본기를 반복하고 좋은 스승을 만나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미용을 통해 사람의 외모뿐 아니라 마음까지 어루만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봉사와 신앙생활을 바탕으로 나성순복음교회에서 10년 연속 전도왕에 오르기도 했다.

아시아 정상에 오른 뒤에도 김 대표는 여전히 배움을 강조한다.

“젊었을 때는 아시아에서 우승했으니 나보다 커트를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울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우러러 김’이라는 별명은 처음에는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본다는 농담에서 시작됐다. 이제 그 이름은 김 대표에게 다른 의미를 지닌다. 남에게 우러름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아프고 소외된 이들을 먼저 우러러보는 미용인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본지 강지나 편집장(왼쪽)과 가새미용실 김인태 대표

화려한 경쟁 무대에서 시작된 김인태 대표의 가위는 이제 어르신과 후배들을 향하고 있다. 47년 동안 이어진 그의 미용 인생은 사람의 머리를 넘어 마음을 다듬는 여정으로 계속되고 있다.

강지나 기자@패션위클리USA, 장소 협조: 카페 로프트

가새미용실: 750 S Western Ave, Los Angeles, CA 90005

강지나 기자
강지나 기자https://fashionweeklyusa.com
패션위클리USA 편집장이자 취재 기자를 맡고 있습니다. LA / OC 현장에서 패션, 트렌드, 푸드, 이벤트 전문 기사를 다룹니다 fashionweeklyu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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