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앤젤레스=패션위클리USA=강지나] 미국에서 오젬픽과 위고비, 마운자로, 젭바운드 등 GLP-1 계열 약물 사용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변화가 식품과 헬스케어 시장을 넘어 패션산업으로 번지고 있다. 소비자의 체형과 의류 사이즈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달라지면서 새로운 옷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발생하는 한편, 교환과 반품이 증가하고 브랜드의 사이즈별 재고 예측도 어려워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Circana에 따르면 2025년 9월 기준 미국 가구의 약 23%에서 GLP-1 계열 약물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보다 4%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GLP-1은 본래 제2형 당뇨병 치료에 사용됐지만, 식욕 억제와 체중 감량 효과가 알려지면서 미국의 소비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는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73%가 의류 사이즈 변화…새 옷 구매도 늘어
PwC가 GLP-1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약물을 사용하는 응답자의 73%가 의미 있는 의류 사이즈 변화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26%는 이전보다 옷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었으며, 복용을 시작한 지 6~8개월이 지난 사용자들의 의류 지출은 평균 9.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중 변화는 단순히 기존 옷을 더 작은 사이즈로 교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달라진 외모에 맞춰 스타일을 새롭게 구성하거나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실루엣과 브랜드를 선택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일부는 체중 감량을 계기로 품질이 좋은 옷이나 프리미엄 브랜드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현재 GLP-1 사용자의 55%가 사이즈 변화를 주요 이유로 새 의류나 신발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약 4명 중 1명은 체형 변화에 맞춰 자신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옷장을 정비했다고 답했다. 의류뿐 아니라 속옷과 스포츠웨어, 신발까지 변화의 영향을 받는 이유다.
그러나 체중이 계속 변하는 과정에서는 소비가 오히려 지연될 수 있다. 몇 달 후 자신의 몸이 어느 사이즈에 정착할지 알 수 없어 고가의 정장이나 드레스, 몸에 꼭 맞는 의류 구매를 미루는 소비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신축성 있는 소재와 조절 가능한 허리 디자인, 여유 있는 실루엣처럼 여러 체형 단계에서 착용할 수 있는 제품이 주목받고 있다.
반품과 재고 부담…브랜드의 ‘사이즈 공식’ 흔든다
GLP-1 확산은 패션기업의 상품기획에도 새로운 문제를 던지고 있다. 의류업체들은 일반적으로 과거 판매 데이터를 이용해 다음 시즌에 필요한 사이즈별 물량을 결정한다. 하지만 소비자의 체형 분포가 빠르게 달라지면 지난 시즌의 판매 비율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체중 감량 중인 소비자가 같은 제품을 여러 사이즈로 주문한 뒤 맞지 않는 상품을 반품하거나, 배송을 기다리는 동안 사이즈가 달라져 더 작은 제품으로 교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배송과 검수, 재포장 비용이 발생하고 계절이 지난 반품 상품은 정상 가격으로 다시 판매하기도 어렵다.
관련 업계 분석에서는 GLP-1 사용 증가에 따라 기존 사이즈별 재고 배분을 조정하지 않을 경우, 2027년에는 연간 4억 점 이상의 의류가 실제 수요와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고 추산했다. 재고와 마진에 노출되는 금액은 약 5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이는 실제 확정된 손실이 아니라 GLP-1 보급과 현재의 사이즈 변화가 계속된다는 가정에 기반한 분석이다.
브랜드들이 대응해야 할 방향은 단순히 큰 사이즈를 줄이고 작은 사이즈를 늘리는 것만은 아니다. 체중 변화의 속도와 폭은 사람마다 다르고, 약물 사용이 중단된 이후 체형이 다시 변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획일적으로 플러스 사이즈 제품을 축소할 경우 오랫동안 제기돼 온 패션산업의 사이즈 포용성 문제가 다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업계에는 더욱 세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매장과 온라인 판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사이즈별 재고를 조정하고, 신축성이나 조절 기능을 갖춘 제품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정확한 실측 정보와 다양한 체형의 착용 이미지를 제공하고, 수선·교환 서비스나 사이즈 변화에 대응하는 고객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대안으로 꼽힌다.
GLP-1 열풍은 패션업계에 새로운 구매 수요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생산·재고·반품 시스템을 시험하고 있다. 이제 의류 사이즈는 한 소비자에게도 고정된 숫자가 아닐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몸을 어떻게 편안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입힐 것인가가 미국 패션기업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강지나 기자@패션위클리USA




